신비로운 위안주고 강하고 따뜻한 생명력 북돋아

달린다는 것이 단지 정처 없는 뜀박질이나 외로운 방황인 것만은 아니다. 달리기는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더불어 체계화되었고, 생활 속의 전개와 시간, 그리고 목표를 결정했다. 땅에 누우면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땅에 앉으면 더 지혜로워지며, 땅을 느끼며 달리면 더 강해지고 참을성도 많아진다. 땅이야말로 인류의 마르지 않는 힘과 에너지의 샘물 같은 것이다.


2014 춘천.
나는 땅과 땅 위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달리며 발바닥을 통해 전해지는 부드럽고 끝이 없을 듯 느껴지는 신비로운 위안과 더 없이 강하고 따뜻한 생명력에 생생한 애착을 느끼게 된다. 땅을 밟는 순간 압축된 땅의 에너지가 발을 떼는 순간 스펀지가 부플 듯 다리를 따라 올라오는 느낌이 든다.

저 멀리 지평선을 뚫고 올라오는 햇살처럼 강한 기운이 내 뒷덜미까지 치달아 올라오면 몸속의 모든 기운과 땅의 기운이 순환의 일치를 이루는 것 같은 성스럽고 신비로운 열감이 후두부에서 느껴지며 온 몸에 희열이 확산되는 전율을 경험한다. 심장은 더 강하게 뛰면서 활발하게 움직이고, 혈액은 휴실을 취할 때보다 더 빨리 강하게 돌면 땅의 기운도 거기에 공명 반응을 일으켜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면서 서로 응답하는 것이다.

세상의 고민들로부터 벗어나 새출발 위한 전환점 만들어
땅·자연의 기운과 스쳐가는 인사 속에 삶의 성찰 기회도　

한 길이 끝나면 다시 또 다른 길로 이어지는 꾸불꾸불한 길의 매혹적인 아름다움, 스카프처럼 펼쳐지는 자줏빛, 은빛, 황금빛의 하늘을 배경으로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주위의 푸른 풍경들 속에서 움직이는 나 자신의 몸에 발산하는 에너지도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감각적으로 빛나게 된다.

달리기는 내 인생이 일시적으로 이 지상에 사는 것일 뿐이며, 언제 어느 때라도 무거우면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등에 맨 가방과 같은 것이며, 가장 친한 가족들조차도 길을 가다 우연히 마주친 사람들처럼 악수를 하며 날씨에 대해 몇 마디 나누다 “안녕”이라고 작별인사를 하는 사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만드는 성찰적 운동이다.

꿈 속에서 아무리 열심히 달려가도 내 집에 도달하지 못해 안달하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을 그렇게 안달복달하며 살아가고 있다. 삶 자체가 아무리 노력해도 만족할 수 있는 단계인 진짜 집에 아직도 도착하지 못하고, 어쩌면 이승에서는 절대로 그곳에 도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쌓여 정신없이 오늘도 달려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이란 것이 휴가 때 하루 종일 산에 나 있는 좁은 오솔길을 이리저리 달리며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면 발길 닿는 임시 거처에서 잠을 자는 것과 똑같지 않은가 말이다. 정처없이 길이 맞닿거나 엇갈리는 대로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달리다가 처음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결국 계속 달리지만 어느 곳에도 가지 않는 것과 같다. 결국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노래 가사랑 똑같다.

달리기는 전환점을 만드는 행동이다.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서,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 달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끄러움과 늘어만 가는 고민들, 그리고 점점 진행되는 체력의 저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달린다. 무언가를 잊기 위해서나 더 이상 지금 이 자리에 있지 않기 위해서는 지루한 도로나 한없이 단조로운 숲길을 달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달리는 것은 곧 마음을 멀리 가져가는 것, 떠난다는 것, 다시 새 출발을 한다는 의미다. 달리면서 만나는 세상은 실제로 매일같이 작별인사를 하는 것과 같다. 이곳에 내일 또 오더라도 이미 세상은 변하여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내일 정확히 이곳에 다시 돌아올 수 있으리란 보장 자체도 전혀 없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인식이 주위를 살피는 시선을 강렬하게 만든다.

달리다 방향이 바뀌거나 언덕을 넘을 때는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달려온 길을 뒤돌아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을 갖고 싶다거나 붙들고 싶다거나, 혹은 간직하고 싶어서 불안한 눈길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나온 길에 나 자신의 빛을 조금이라도 남겨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러는 것이다. 달린다는 것은 불확실한 세상에 강렬한 시선으로 구멍을 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역사가 없는 길들에 시선을 퍼뜨려 박혀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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